韓国のスポーツ史で最も面白いミステリー。『なぜ野球はサッカーを追い抜いて最高の人気スポーツになったのだろうか?』に対する解答。漢陽大学でスポーツ文化史学を研究するイジョンソン教授は日帝強占期から2000年代まで野球が国民的スポーツになった過程を追跡した。野球が国民的スポーツになるにはリートの学縁が必須であった。日帝強占期時代名門校の校技だった野球は疾視の対象だった。球一つだけあれば良いサッカーとは違い価格の高い装備が必要な野球は貴族のスポーツだった。 さらに日帝は野球を通して内鮮融化を狙った。朝鮮でも甲子園の大会予選を開き、朝鮮人チームが宣伝すれば内鮮融化の証拠として称えたりした。しかしそれほど野球は羨望の対象でもあった。エリートと貴族を象徴する野球は解放以後にも地域名門校を象徴するスポーツになった。京畿高、徽文高、培材高、慶南高、慶北高、光州一高、全州高のような地域名門と善隣商高、群山商高、馬山商高のような商業高等学校、信一高と沖岩高のような新興名門まで地域名門校は野球を巧技にして競争を広げた。学生時代野球に沸き返ったエリートは母校の野球を支援して、やはりエリートが掌握したマスコミ界は野球大会を開いて新聞販促に力を入れた。1970年代高校野球の興行は決して偶然ではなかった。プロ野球が出帆するにもエリートの力は絶対的だった。アメリカ留学を経験した野球名門校出身エリートは政界と財界を掌握していた。ヨーロッパに根差したサッカーより野球が一歩リードした理由だった。ここに高校野球を通じて発散された地域主義がプロ野球にそのまま移植され、野球は韓国最高の人気スポーツになった。このように誕生したプロ野球は1980年代文化のアイコンになって、これはまた文化資本になって文化エリートのDNAに刻まれた。このように野球は学縁で始まり、政治、経済、メディアと文化に至るまで広範囲な影響力を行使して、拡大再生産されて韓国を野球の国にした。本書でスポーツが単純に資本やエンターテイメント的な要素だけでは評価することができず、社会的相互作用の結果物という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インドネシアのバドミントンやインドのクリケットのように韓国が野球の国になるには歴史的・文化的背景があった。他のすべての社会分野のように、スポーツも多くの観点で眺めて解釈すればこそ実体が明確にわかる。
(目次)
PART I. 조선 야구 엘리트의 탄생
1. 일제 강점기 야구 독해법: ‘귀족 스포츠’ 또는 ‘일본 스포츠’
2. 고시엔 대회와 조선 엘리트 동화 정책
3. 조선 엘리트의 요람 공립고등보통학교에 야구를 이식한 일본
4. 내선융화의 롤 모델 상업학교의 야구 전통
5. 친일파와 지일파의 문화 자본이 된 야구
6. ‘귀족 학교’ 휘문고보의 고시엔 8강 진출의 비밀
7. ‘기울어진 운동장’의 서글픈 현실
8. 조선 야구 엘리트의 ‘먹고사니즘’
PART II. 해방 공간을 파고든 야구
1. 야큐(やきゅう)는 어떻게 베이스볼(baseball)이 되었나?
2. ‘학원 야구’의 열기와 야구 명문교의 등장
PART III. 한국 야구의 부스터: 재일 교포 선수와 은행 야구단
1. 재일 교포 학생 야구단 방문 경기에 투영된 정치
2. 북송 사업과 재일 교포 야구 선수
3. 박정희가 1963년 야구 한일전 승리에 기뻐했던 이유
4. 상업고 동문과 은행 야구 팀의 등장
5. 아시아야구대회와 은행 팀에서 빛난 재일 교포 선수들의 공헌
PART IV. 고교 야구 황금 시대
1. 고교 야구는 명문고의 경쟁 무대
2. 공화당은 왜 영호남 친선 야구 대회를 개최했나?
3. 상업고가 만든 야구 도시 군산과 마산
4. 구도(球都) 부산과 전파 월경
5. 신문사 주최 고교 야구 대회와 패자 부활전
6. 라디오와 TV를 지배한 고교 야구 중계
PART V. 프로 야구의 원형을 제시한 해외 교포
1. 프로 야구의 초석을 놓은 재미 교포 홍윤희
2. 재벌의 야구 팀 창단을 이끈 재일 교포 신격호
PART VI. 프로 야구 시대
1. 전두환 정권과 야구 민족주의
2. 프로 야구 출범에 영향을 준 청와대 수석들
3. 재벌이 프로 야구에 뛰어든 사연
4. 절정에 오른 야구 지역주의 (feat. 김대중·김영삼·김종필·노태우)
5. 해태 타이거즈의 전국 팬덤과 ‘전라도 엑소더스’
6. 한국 문화 엘리트들은 왜 야구를 사랑했을까?
7. 프로 야구의 중계권 잭팟과 WBC
에필로그